비참함의 끝으로 떨어져봐야 그 관계를 끝낼 수 있다. 2017

내가 그런 인간이다.

할 일이 무척 많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 없던 며칠 간.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해봐도 그는 받아주지 않았다.
차라리 고맙다.

우리는 안 된다는 걸, 언젠간 헤어져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늘 함께 하는 미래를 들뜬 표정으로 얘기해왔지만
소꿉장난 같이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기에는 내가 너무 찌들어 있었다.

너무도 다른 환경.
서로 사랑한다는 것 외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어린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에 아픈 경험은 공유할 수 있었다.
미래를 함께 그릴 사람에게는 그런 걸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일부러 그에게는 온전히 다 드러냈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좁힐 수 없는 재정적인 문제.
나는 돈드는 취미도 없고 옷이나 사치품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그에겐 내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이해할 수 없을만큼 컸다.
저축이 없고 벌이가 일정치 않은 그의 월급에 준할 만큼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

쇼핑을 할 때도, 같이 있을 장소를 예약할 때도 최저가만 찾는 모습에,
언제나 돈 걱정부터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내가 다 쓰려해도 자존심 상해하는 모습에
나도 행복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여유롭지 않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만나면 그저 사랑스러웠다.

정말 안 될까.
어쩌면 둘다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함께 하는 미래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중에 트러블이 생겼던 거고.
이게 헤어질 기회가 되어버렸구나.

그는 더이상 내가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다행이다.

이대로 점점 마음이 단단해져가길, 굳어버리길.



주도권을 쥔 쪽 2017

헤어짐을 말하면서 오한이 났다.
춥지도 않은데 떨림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는 일단 네 몸이랑 멘탈부터 추스리라며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내게 큰 상처를 주었고 
우린 아마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며칠동안 너무 아파서 내 속을 다 드러내고 상대의 속도 박박 긁어놓았다.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정신이 좀 들고나서는
만나서 행복을 빌어주고 헤어지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떨림은 멈췄는데 난 왠지 여기 발이 묶여버린 것 같다.
일 때문에 가볼 수 밖에 없다고 제발 쉬라고 카톡이 와서 답장으로 
길게 이별의 메세지를 쓰다가 다 지워버렸다.

아직도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는
'사랑 안하는 건 아냐. 하지만 지금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닌 거 같아.'
라고 대답했다.


비참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K가 말했다.

"걔는, 어쩌면 너보다 더 상처받았을거야. 
 너네 관계의 주도권은 항상 너한테 있었잖아. 
 그래서 넌 네 속에 있는 얘길 다 했겠지만 걘 아마 못했을거야."


그 동안 주도권이고 뭐고 신경 안 썼었는데 적어도 지금은 내 쪽에 없다.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된걸까.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심하게 다친 약한 동물같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비참했는데 
그에게는 내 몰아세움이 이빨세운 맹수가 물어뜯는 정도의 상처일 수 있겠구나.

일단 당분간 보류.
정말 추스리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스트레스와 일탈 2017

뭐... 이래저래 못마땅한 상황이 많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을 다시 찾아볼 건 뭐야.
받자마자 구겨뒀던 명함을 찾아 번호까지 저장했다.

그 날 있었던 엄청난 일들이 다시 떠오르고,
존잘이라며 상관없다면 자기가 데쉬해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짜증이 나서 놀랐다.

묵묵히 있어주는 네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면 망설일 것도 없이 널 택하겠지만 
한 번 더 보고싶은 마음은 계속 들지도 모르지.

다신 다른 사람 앞에서 널 등신 만들지 않을테니
또 럭비공처럼 튀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혼자 잘 알아서 하길.

맥주 한 캔 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자자. 일찍.


새벽에 나가려면 자야하는데

생각이 너무 많다.
부정적인 의미로 너무 많다.
오늘도 약발이 안 들면 어쩌지.

아까,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을 곱씹어본다.


정말로 본인한테 어울리는 길이 맞아요?

쓰레기통에 같이 들어가진 말아요.



휴.



역시 생각이 많다. 
내일로 좀 미뤄두자.
시차땜에 며칠 쪽잠뿐이었으니 오늘은 미련없이 눕자.

결핍 2016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고 sns를 안 해도 잘 지낼 수 있지만
해야하는 일이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하고싶은 일은 불특정 다수 타인의 인정이 꼭 필요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필요악인데,
이 간극을 좁히기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사랑받기 위해, 더 멋져보이기 위해 노력해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스스로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하기 싫지만 극뽁!!! 하는 거니깐) 하는 바람이 있다.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정치에 크게 관심없었지만 이번 일은 한 동안 멍하게 누워있기에 충분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해서 뭐하나.
이러려고 잠줄이고 욕먹고 억지로 웃으며 노오력했나.

이 시국에 정말 화가 나는 이유는 내가 바라는 건 정말 소박한 거라는 거다.

받은 거 하나 없이 서울의 몸 누일만한 오피스텔을 반전세로 얻었고
보증금도 거의 다 갚았다.

그래도 가진 게 쥐뿔도 없구나.

그냥,
좀 더 안정적인 느낌이 나는 집에서 살고 싶고,
별 욕심없는 내가 생계 걱정 없이 안빈낙도할 수 있는 삶이 필요할 뿐인데.

앞이 잘 안 보인다.

하지만 정신차려야지.
플랜비, 플랜씨도 생각해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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